2022-01-19 10:26 (수)
VESPA, 스쿠터의 원형?
VESPA, 스쿠터의 원형?
  • 아이디어홀릭
  • 승인 200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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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 비해 4발달린 차를 선호하는 이 우리나라에서 열악한 교통환경, 하늘까지 치솟을지도 모를 기름값에 대한 걱정 때문에 스쿠터시장이 예전에 비해 활발해 졌고 매년 10%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마켓의 미래도 무척 낙관적이라고 한다. (4월20일수요일 중앙일보) 난 이 스쿠터를 머리에 떠올리다보면 결국 종착지는 베스파로 귀결하는데...오늘은 그 베스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베스파는 오랜전통(1884년부터,약120년)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피아지오(PIAGGIO)사의 제품이다. 피아지오의 설립자 리나르도 피아지오는 뱃사람집안에서 태어나 20살의 나이로 고급객선의 각종목제용품에 주목, 공장을 차리게 된다. 회사는 날로 번창하여 뛰어난 목제가공기술을 이용해 철도,고급차,트럭에 까지 손대기 시작하며 사업을 확장시켜나갔다. 그러다 2번의 세계대전으로 결국 전쟁사업에까지 뛰어든 피아지오사는 군부의 요청에 의해 군용 보트, 항공기 수리를 거쳐가며 항공기엔진까지 만들게 되어 항공기제조메이커로 승격, 그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한참 항공기메이커로 잘나가던 때에 창업자 리나르도는 임종을 맞이한다. 아마도 잘나가는 자신의 회사를 보며 뿌듯하게 무덤으로 들어갔을것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잊는 아들,엔리코는 전쟁이 끝난후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공장과 회사를 다시 재건하기위해 대중적이며 값싼 상품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세운 피아지오사를 위해......(당시,패전국가의 비행기생산은 금지되었다.참고로 미쓰비시도 2차세계대전때에는 제로센이라는 망할놈의 전투기를 만들던 회사)



시대를 예견한 디자인 본능




그 상품개발의 초점은 오토바이로 맞추어졌다. (무슨우연처럼 미쓰비시사도 동시기에 스쿠터를 개발한다.)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첫 프로토타입(위의 사진:파페리노 1943)의 모습을 보고, 엔리코는 만족하지 못했다. 바로 디자인이 문제였던 것이다. 아름답지도 기능적이지도 못한 생김을 그는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새 엔지니어를 맞이한다. 엔리코는 새 엔지니어, 다스카니오 (이사람은 세계최초로 실용 헬기의 창안자로 유명) 에게 다음 5가지조건을 내걸며 오토바이의 설계를 의뢰한다.



1.여성도 쉽게 탈수있게, 특히 안장을 몸체에 붙일것...


2.물이 고인곳을 지나갈때 물이 튀지않게


3.오일,연료가 흘러나와 옷이 더러워지지않게


4.스페어타이어의 보관할수있게


5.가볍고, 취급이 간편하며 타기쉽게 하기



이조건에 훌륭하게 응한 다스카니오는 여기에 6가지의 주안점을 두고 스텝들과 설계를 시작한다.



1.대량생산이 가능하게


2.유지비를 적게들게


3.기존의 바이크와 동등한 스피드를 낼수있게


4.항공기술을 이용한 차체 통짜성형 (비행기 몸체와 같이)


5.타이어교환은 자동차처럼 간단하게


6.스포티한 생김이지만 타기쉽게 만들기



다스카니오는 엔진을 뒤로 옮겨 다리의 공간을 확보시켰고, 자사의 특기를 살려 항공기바퀴식인 싱글암방식도 앞바퀴에 도입하였으며 발로 조작해야할 변속기가 너무나도 싫었던 다스카니오는 변속기를 손잡이식(3단)으로 가능하게 설계하였다. 만약 엔리코가 프로토타입에 타협을 했다면 지금의 베스파 전설도 만들지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스쿠터라 부르는 것의 형태,그 진정한 의미로서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 진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1946년 4월, 피아지오사는 이세상에 혁신 그자체인 베스파98을 내놓게된다. 엔리코와 다스카니오가 만난지 딱 1년후의 일이었다. 엔진이 바이크의 후륜,뒤에 있기 때문에 엉덩이 부분이 불룩해졌고 그모습이 꿀벌과도 닮았다 하여 이 스쿠터를 VESPA(꿀벌)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전유럽에서 폭발적인 빅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발매로 부터 10년간 100만대를 돌파하였다. 전쟁후, 값싸고 쾌적한 탈것을 원하고 있었던 대중들의 요구를 엔리코는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슨운명의 장난처럼 엔리코는 그의 아버지처럼 베스파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1965년 세상을 뜨게 된다. 아버지처럼 잘나가는 회사를 바라보며....그리고 이다음해 부터 자동차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도 되고 경쟁 오토바이업체들의 도산이 줄을 이었다.





엔리코의 뒤를 그의 사위인 움베르토가 이어갔고 1977년, 오일쇼크의 전까지의 `저주받은 스쿠터의 시대`(다들 기름 걱정없이 차만 좋아했으니)를 자전거에 오토바이 엔지를 탑재한 저가모델(챠오,CIAO)을 개발, 베스파에 필적할만한 히트를 시킴으로써 피아지오사를 연명시켜나갔다. 그의 아들인 지오바니는 베스파의 3세대모델을 개발, 새역사를 쓰려던 때 암으로 숫가락을 놓게 되었다. 피아지오가문의 혈통이 끝어지게 되면서 피아지오사는 팔려나가 피아트사가 피아지오사를 산하에 두게되었다.



피아지오사의 공로자들의 죽음뒤에는 항상 커다란 위기가 왔다. 이것이 피아지오사의 징크스일지도 모른다. 이제 피아지오가문을 떠난 베스파, 그 미래는 과연 어디로 향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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